잘 안된 날은 정말 버리는 날일까요

오랑Pick 6편 자기성찰 · 6장

노을이는 세 칸 양식에 익숙해졌습니다. 수업 끝나고 5분이면 손이 저절로 움직였거든요. 그러다 한 번 멈췄습니다. 모둠 실험을 다시 설계했는데 결과가 안 나온 날이었습니다.

왼쪽 칸은 채워졌습니다. 몰랐던 것은 많았으니까요. 가운데 칸에서 펜이 섰습니다. 알게 된 것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노을이는 그날 노트를 덮었습니다.

지난 장에서 우리는 전과 후와 행동, 세 칸을 그었습니다. 잘된 날에는 잘 굴러갑니다. 문제는 안된 날입니다. 그런 날이야말로 적을 것이 제일 많은데 말이죠.

핵심 포인트
  • 실패는 결과만 크게 남기고 과정을 지워 버립니다.
  • 적을 것은 안 된 결과가 아니라 갈라졌던 결정 하나입니다.
  • 바꾼 행동이 붙어야 실패가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 안된 날은 왜 칸이 비어 있을까

안된 날에 기억이 더 흐린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결과가 너무 커서 과정을 덮기 때문입니다. 머리에는 안 됐다는 한 덩어리만 남고, 어디서 어긋났는지는 안개처럼 사라집니다.

감정도 한몫합니다. 다시 떠올리기가 싫으니까요. 노트를 덮는 쪽이 편합니다. 그런데 덮은 날은 다음에 같은 자리에서 또 걸립니다. 지워진 것은 실패가 아니라 그 실패가 알려 줄 뻔한 정보였습니다.

노을이가 가운데 칸을 못 채운 것도 이 탓입니다. 알게 된 것이 없다고 느꼈지만 사실은 하나 있었습니다. 온도를 언제 올릴지 정하지 않고 시작했다는 것. 그건 결과가 아니라 결정에 관한 정보입니다.

잘된 날의 기록은 어차피 비슷합니다. 순서대로 됐다는 이야기니까요. 갈리는 정보는 안된 날에 몰려 있습니다.

어느 날에 정보가 많을까 잘된 날 순서대로 됐다 적을 것이 한 줄 기억은 선명, 정보는 얇음 안된 날 어디서 갈렸는지가 있다 적을 것이 여러 줄 기억은 흐림, 정보는 두꺼움 흐린 쪽을 덮으면 두꺼운 쪽을 버립니다

🔀 결과 말고 갈림목을 적습니다

실패를 적는 요령은 하나입니다. 안 된 결과를 쓰지 말고, 갈라졌던 결정 하나를 찾아 적는 것입니다. 결과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모르는 쪽은 그 결과로 이어진 갈림목입니다.

찾는 방법은 단순합니다. 그날을 되감으면서 다르게 할 수 있었던 순간에 표시를 합니다. 표시가 여러 개면 가장 앞의 것 하나만 고릅니다. 뒤쪽 표시들은 대개 앞의 결정에 딸려 온 것이거든요.

되감아서 갈림목 하나 고르기 첫 갈림목 딸려 온 선택 딸려 온 선택 결과 온도 올릴 시점을 안 정하고 시작 결과 없음 되감기는 결과에서 시작해 맨 앞에서 멈춥니다

고른 갈림목은 세 줄로 씁니다. 첫 줄은 사실입니다. 무슨 결정을 했는지만 담담하게 적습니다. 둘째 줄은 그때 무엇을 몰랐길래 그 결정을 했는지 적습니다. 셋째 줄은 다음에 같은 자리에 서면 무엇을 먼저 정할지 적습니다.

안된 날 세 줄 1 사실: 온도 올릴 시점을 안 정하고 실험을 시작했다 2 몰랐던 것: 반응이 시작되면 되돌릴 수 없다는 점 3 다음 선택: 시작 전에 시점부터 종이에 적고 연다

📖 바꾼 행동이 붙어야 이야기가 됩니다

세 줄까지 왔으면 절반입니다. 나머지 절반은 셋째 줄을 실제로 해 보는 것입니다. 해 본 흔적이 없으면 그 기록은 다짐으로 끝납니다. 다짐은 아무 데도 안 남습니다.

실패담이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지점도 여기입니다. 무엇이 안 됐는지가 아니라 그래서 무엇을 바꿨는지에 있습니다. 앞쪽만 있는 이야기는 하소연이 되고, 뒤쪽이 붙으면 성장의 기록이 됩니다. 길이는 상관없습니다. 한 줄이어도 붙어 있으면 됩니다.

중3이라면 안된 날의 세 줄을 따로 모아 두세요. 학기가 끝날 때 그 묶음이 제일 두꺼운 자료가 됩니다. 고1 학부모라면 왜 안 됐냐고 묻는 대신 다음엔 뭘 먼저 정할 거냐고 물어봐 주면 됩니다. 질문 하나가 셋째 줄을 대신 열어 줍니다.

뒤쪽이 붙느냐로 갈립니다 앞쪽만 있을 때 안 됐다, 아쉬웠다 다음엔 잘하겠다 읽어도 남는 게 없습니다 뒤쪽이 붙을 때 시점부터 정하고 다시 했다 두 번째 판은 굴러갔다 여기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노을이는 덮었던 노트를 이틀 뒤에 다시 폈습니다. 가운데 칸에 알게 된 것이 없다고 쓰는 대신 갈림목 한 줄을 적었습니다. 그다음 주 실험은 시점을 먼저 정하고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값이 나왔습니다. 세 줄이 만든 차이였습니다.

이 장의 성공 기준은 하나입니다. 최근에 안 풀린 일 하나를 골라 갈림목 한 줄을 적을 수 있으면 됩니다.

🍊 오랑의 한 줄

실패는 그냥 두면 흐려지고, 세 줄을 지나면 재료가 됩니다. 노을이가 되찾은 것도 실험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그날 자기가 뭘 안 정하고 시작했는지였습니다. 오늘 안 풀린 일 하나에 갈림목 한 줄만 붙여 보세요.

그런데 혼자 되감으면 자꾸 같은 자리에서 멈춥니다. 내 눈에 안 보이는 갈림목은 누가 짚어 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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