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명할 수 있는 것만 세면 몇 줄이 남을까요
—
by
오랑Pick 2편 지식흡수 · 12장 노을이는 12월에 책상 서랍을 열었다가 한 해 동안 채운 노트 열두 권이 그 안에 나란히 꽂혀 있는 것을 봤습니다. 한 권씩 넘겨 봤습니다. 그러다 손이 멈췄습니다. 노트가 부실했던 것도 아닙니다. 줄마다 아는 것이 빼곡했죠. 다만 그중 누군가에게 바로 내놓을 수 있는 모양을 갖춘 문장은 손에 꼽을 만큼 드물었습니다. 그렇다고 헛수고였다고…
-
활동이 끝난 자리에 무엇이 남아야 다음이 생길까요
—
by
오랑Pick 1편 대외활동 · 12장 하늘이의 올해 목록에는 활동이 여섯 개 적혀 있었습니다. 부스도 있었고 봉사도 있었고 공모전도 하나 있었죠. 마지막 활동이 끝난 날, 하늘이는 목록을 한참 들여다봤습니다. 빠진 칸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활동 수는 넉넉했습니다. 여섯 개가 하나같이 같은 방식으로 끝났던 것이 걸림돌이었습니다. 끝났다는 표시만 붙은 채로요. 표시만 붙은…
-
면접에서 말문이 막히는 건 말솜씨 탓일까요
—
by
오랑Pick 6편 자기성찰 · 11장 노을이는 연습 삼아 앉은 면접 자리에서 첫 질문에 막혔습니다. 어려운 질문도 아니었습니다. “그때 왜 그렇게 하셨어요?” 그 활동은 노을이 기억에 또렷했습니다. 무엇을 했는지는 바로 말했죠. 왜 그렇게 했는지를 말하려는 순간 문장이 끊겼습니다. 끊긴 자리에서 노을이는 말솜씨를 탓했습니다. 더 또박또박 말하면 나아질 거라고 믿었죠. 믿음은 빗나갔습니다. 다음 연습에서도 같은 자리에서 멈췄으니까요.…
-
혼자 키운 역량은 왜 세특에서 사라질까요
—
by
오랑Pick 5편 역량강화 · 11장 구름이는 자료를 다루는 손이 제법 빨라졌습니다. 흩어진 글을 묶고 표로 정리하는 일이 이제 어렵지 않았죠. 늘었다는 감각은 착각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과제를 예전보다 절반 시간에 끝냈으니까요. 학기말에 과목별 기록을 읽다가 구름이는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그 빨라진 손이 어느 과목에도 적혀 있지 않았거든요. 역량은 모자라지 않았습니다. 그 손이 움직인 자리가 대부분 방 책상이었을…
-
설계는 다 세웠는데, 왜 기록에는 안 보일까요
—
by
오랑Pick 4편 진로설계 · 11장 노을이의 설계는 한 해 동안 꽤 단단해졌습니다. 고른 이유도 남의 말이 아니라 자기 문장이었죠. 한 해를 마치고 받아 본 생활기록부 앞에서 노을이는 멈칫했습니다. 진로 쪽 칸에 적힌 문장이 낯설었거든요. “진로에 관심이 많고 성실하게 참여함.”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노을이의 설계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없는 이유는 설계가 부실해서가 아닙니다. 설계가 노을이 안에만…
-
선생님께 얻은 조언은 기록 어느 칸에 적힐까요
—
by
오랑Pick 3편 휴먼네트워크 · 11장 구름이의 공책에는 조언이 제법 모였습니다. 선생님이 짚어 준 문장과 선배가 알려 준 요령이 날짜별로 적혀 있었죠. 적힌 줄을 세어 보니 열두 줄이었습니다. 정작 생활기록부를 펼치자 그 열두 줄은 한 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기록은 누구를 만났는지 적는 자리가 아니니까요. 구름이가 헷갈린 것은 만남과 기록 사이의 거리입니다. 거리가 있다는…
-
잘 해냈는데 기록이 한 줄이면, 무엇을 놓친 걸까요
—
by
오랑Pick 2편 지식흡수 · 11장 노을이는 읽은 책을 발표 슬라이드에 얹는 데까지 갔습니다. 발표도 무사히 끝났고요. 그런데 학기말 기록에는 한 줄이 남았습니다. 한 줄은 틀린 줄이 아니었죠. 다만 노을이가 겨울 내내 읽은 자취는 그 줄에 없었습니다. 그 줄을 보던 친구는 선생님께 말씀을 드려 보라고 했습니다. 노을이는 그 말 앞에서 멈췄죠.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알…
-
공고를 보고 시작하면, 왜 늘 시간이 모자랄까요
—
by
오랑Pick 1편 대외활동 · 11장 하늘이는 빈 파일을 만들어 두는 일까지는 해냈습니다. 그런데 그 파일에 적을 활동이 오지 않았습니다. 학교 게시판에 공고가 붙은 날, 마감이 열흘 뒤였거든요. 열흘은 신청서를 쓰기에는 됩니다. 준비를 하기에는 모자랍니다. 모자란 열흘 동안 하늘이는 양식만 채웠습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칸 앞에서 급히 지어냈고요. 그렇게 낸 신청서는 하늘이를 닮지 않았습니다. 닮지 않은…